보험소비자가 외력에 의한 ‘우연한 사고’로 다쳐 보험금을 청구하면 보험사들이 환자가 사고 이전에 이미 가지고 있던 질병인 기왕증으로 판단하고 보험금을 삭감하거나 지급을 거부하는 사례들이 문제가 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매일일보 박한나 기자] #. 김모(62세, 여)씨는 눈길을 걷던 중 돌부리에 넘어져 대퇴골 골절로 인한 인공관절 치환술을 받았다. 2010년 2월 00손해보험사 종합보험에 가입했던 김씨는 수술 이후 보험사에 보험금을 신청했지만 보험사에서 골다공증이 골절에 기여했다는 ‘기왕증’을 이유로 보험금을 20% 삭감당했다.
18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보험소비자가 외력에 의한 ‘우연한 사고’로 다쳐 보험금을 청구하면 보험사들이 환자가 사고 이전에 이미 가지고 있던 질병인 기왕증으로 판단하고 보험금을 삭감하거나 지급을 거부하는 사례들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런 문제를 막을 보험업법 개정안이 협의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보험 약관에 재해로 인한 인공관절 치환술은 장해진단서 없이도 일반 진단서로 후유장해를 보장받을 수 있다. 인공관절 치환술은 기존 관절을 인공재료로 만든 관절로 바꾸는 수술로 신체의 일부를 잃던가 신체 기능에 영구히 장해가 남기 때문이다. 치환술 이후 예후가 불량한 경우에는 장애인복지법에 따라 국가장애도 신청할 수 있다.
문제는 수술 시 고관절 부위에 골다공증이 발견됐다는 이유로 사고와의 인과관계가 떨어진다고 주장, 지급 보험금을 삭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험소비자 수술의 원인이 우연한 사고임에도 보험사들은 노화현상으로 인해 이미 관절이 약해져 다친 것으로 보고 보험금을 전액 지급하지 않는 게 핵심이다. 기왕력인 골다공증이 골절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기왕증은 노화로 인해 자연스럽게 생긴 현상을 의미한다. 나이가 듦에 따라 신체가 퇴행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노화가 질병은 아니다. 무엇보다 소비자들이 사고 전에 골다공증 등으로 병원에 방문하거나 치료한 이력이 전혀 없음에도 사고 원인이 노화로 인한 질병이라고 주장해 지난 10년간 관련 민원이 증가하고 있다.
보험사들은 보통약관 제19조(다른 신체상해 또는 질병의 영향)에 따라 장해율 산정 시 이미 존재한 신체상해나 질병의 영향이나 그 원인이 된 사고와의 인과관계, 사고의 관여도를 반영해 지급 보험금을 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왕증 병변과 사고가 그 증상을 악화시킨 부분만큼 사고와의 관여도를 산정해 평가한다는 것이다.
특히 기왕증은 골다공증 외에도 허리 디스크 관련해서도 보험사와 소비자의 견해 차이가 심한 사안이다. 자동차 사고로 인해 추간판탈출증(경추제 5번과 6번)으로 제거 및 유합술을 한 경우 보험사에서는 100% 기왕증이라는 주장으로 치료비를 제외한 입원비만 지급할 것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디스크도 골다공증처럼 의학적으로 15세 이상이 지나면 노화현상이 발생, 점진적으로 디스크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노화로 인해 생긴 추간판탈출증은 교통사고 이전에 이미 보험소비자가 가지고 있던 질병으로 사고로 발견됐을 뿐이어서 보험금을 전액 지급할 수 없다는 것이 핵심이다. 판례상 전체 보험금 중 50%의 보험금을 지급하는 상황이다.
보험에 최초 가입할 때는 소비자들에게 기왕증 관련 설명이 전혀 없다가 정작 사고 발생 후 기왕증으로 보험료를 삭감하는 것이니 최초 상품 개발 시 보험료를 적게 받거나 혹은 약관을 수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하지만 이는 지난 10여 년간 지속적으로 발생한 문제여서 보험업계는 보험업법 발의를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오중근 금융소비자연맹 본부장은 “골다공증을 기왕증으로 해서 감액하는 것은 정말 타당하지 않다”며 “골다공증이 심한 경우에는 골절이 쉽게 되므로 이 사실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처음 보험 가입 시 골다공증이 없는 상황에서 가입했다가 나이 먹은 후 생겼다면 보험금을 전액 지급해야 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김창호 국회 입법조사관은 “보험사들이 골다공증이나 디스크 등을 기왕력에 의한 질병이라고 주장하는데 그러려면 골다공증이나 디스크가 자연적으로 생기는 것에 대한 역학관계를 설명하고 보험금을 삭감해야 한다”며 “하지만 그런 증거를 제시하지 않고 무조건 기왕증을 주장하며 보험금을 못 준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안 맞는다”고 했다.
박한나 기자 liberty0127@m-i.kr
<저작권자 © 매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