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 권태훈씨(35)는 4년 전 그날을 잊지 못한다. 2016년 9월 9일 자정이 넘은 시각이었다. 낯선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고 달려간 대학병원 응급실엔 다섯 살 터울 동생 권대희씨가 피투성이로 누워있었다. 성형수술을 하다 그리 된 것이라고 했다. 49일 간의 연명치료 끝에 동생은 거짓말처럼 세상을 떠났다.병원은 동생이 죽은 뒤에도 ‘14년 무사고’란 광고문구를 내걸었다. 한 차례 처벌을 받았으나 다시 같은 광고를 걸었다. 태훈씨는 직접 병원을 찾아갔다. 원장에게 ‘사고 낸 병원 아니다’라고 거짓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돌아가겠다고 했다. 원장은 계속 찾아오면 업무방해죄로 신고하겠다며 돌아가라고 했다. 사건에 대해선 ‘법대로 처리하자’고 했다. 대체 법은 누구의 편인 것일까.21세기 벽두인 2000년 1월, 한국 의료역사에 한 획을 그은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김찬우 당시 보건복지위원장(한나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의료법 개정안으로, 의료인의 면허취소 사유를 대폭 완화한 것이 골자였다. 이 법안으로 이후 수많은 사람이 웃었고 그보다 많은 사람이 통곡하였다.
기존 의료법은 의료인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경우 면허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하지만 법이 개정되며 의료법 또는 보건의료와 관련되는 법령을 위반한 경우에만 면허취소가 가능해졌다.
이 법안이 만들어진 뒤 한국 의료사고 피해자들은 의사에게 같은 말을 듣는다고 호소한다. 권태훈씨가 동생이 수술받은 성형외과 원장으로부터 들었다는 “법대로 하자”는 말이다.
이유는 명확하다. 통상 의료사고에 적용되는 형법상 ‘업무상 과실치사상’의 죄목으로는 의사 면허가 취소되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집행유예로 풀려나오기까지 한다. 의사를 포함한 의료진에게 환자를 해하려는 고의가 인정되지 않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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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권대희씨가 군 복무 중 면회를 온 어머니, 형과 기념사진을 찍은 모습. 권씨는 전역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성형외과에서 수술을 받던 중 중태에 빠져 49일만에 숨졌다. 고 권대희씨 유족 제공. |
■"의사들은 의료법만 무서워한다"권대희 의료사고 사망사건은 3년여에 걸친 수사 끝에 현재 형사공판이 진행 중이다. 재판이 진행되고 있지만 유가족들이 보다 관심을 가진 건 따로 있다. 바로 법원에 접수된 재정신청이다.
재정신청은 검찰의 기소내용에 불복해 법원에 기소의 당부를 묻는 절차다. 권씨 유족은 검찰이 의료진에게 의료법 상 무면허 의료행위 혐의를 기소하지 않은 것이 부당하다며 재정신청을 접수했다. 법원은 이를 들여다보고 있는 상태다.
유족이 재정신청을 낸 이유는 전술한 바와 같다. 업무상 과실치사 등 기소된 모든 혐의가 인정되더라도 권씨 죽음에 책임 있는 자들에게 실효성 있는 처벌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업무상 과실치사로 집행유예가 선고된다면 지난 4년 동안 문제없이 영업해온 병원은 유죄판결에도 계속 성업할 게 분명하다.
의사 없이 35분여 동안 홀로 지혈행위를 한 간호조무사에게 의료법 상 무면허 의료행위를 적용하고, 의사에게 그 교사·방조죄를 확대 적용해 면허 정지 또는 취소, 의료기관 허가 정지 등의 처벌을 이끌어낼 경우와는 병원 측 부담이 천양지차다.
의료사고를 일으킨 병원과 의료진 사이에서 “의료법만 무섭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의료사고 유족들이 “법대로 하라”는 말을 듣는 게 당연한 일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선진국은 물론이고 한국 의사들도 2000년 전까지는 의료과실 소송을 두려워했다. 의료법 개정 전까지는 말이다.
현행 의료법은 제8조 제4호에서 의료인의 결격사유를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다. 요약하자면 ‘허위로 진료비를 청구하여 환자나 진료비를 지급하는 기관이나 단체를 속인 경우’, 그밖에 의료법 및 보건관련 법령을 위반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는 경우다.
형법 상 횡령, 배임, 절도, 마약흡입, 업무상과실치사상, 강도, 강간은 물론이고 살인을 저지른다 해도 의사 면허를 취소할 수 있는 법률적 근거가 없는 것이다. 업무상과실치사상만이라도 포함돼 있었다면 심각한 수준의 의료과실을 일으킨 의사의 자격에 제한을 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개정 이전엔 가능했던 일이다.
2018년 직업별 범죄수 |
(건) |
|
살인 |
강도 |
성폭력 |
절도 |
기타 범죄 포함 합계 |
의사 |
2 |
0 |
163 |
46 |
6169 |
변호사 |
0 |
0 |
19 |
3 |
767 |
종교인 |
4 |
3 |
137 |
175 |
5260 |
언론인 |
0 |
0 |
16 |
20 |
1475 |
외판원 |
2 |
4 |
99 |
208 |
5279 |
유흥업 |
1 |
5 |
83 |
218 |
4466 | |
(대검찰청) | |
■의사 범죄 속출에도 철통 면허는 '여전'구체적인 사례를 들어보자. 지난 2007년 경남 통영에서 근무하던 의사 황모씨는 수면내시경을 받으러 온 여성 환자들을 상습 성폭행한 혐의로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다. 황씨는 출소 후 경남 다른 지역에서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의사면허가 유지된 탓이다. 오늘도 황씨에게 진료 받고 있을 대부분의 환자들은 이 같은 사실을 알지 못한다.
황씨 만일까. 지난해 4월 산부인과 수술을 위해 대기하던 여성 환자의 신체를 반복해 만졌다는 의혹을 받은 서울아산병원 인턴 A씨 사례는 의료법 개악이 의사들의 윤리의식을 어느 수준까지 떨어뜨렸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피해자가 마취상태에서 추행을 당해 범인이 누구인지 인지하지 못한 탓으로 형사고발을 면한 A씨는 병원의 정직처분에 반발해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징계취소 신청을 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이 병원 인턴으로 근무하며 “(환자의 몸을) 만지고 싶어서 여기 더 있겠다”는 등의 성희롱성 발언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A씨가 받은 처벌이라곤 병원의 정직 3개월 처분이 고작이다.
의사들의 성폭력 범죄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4년 83명, 2015년 109명, 2016년 119명, 2017년 137명, 2018년 163명의 의사가 성범죄를 저질러 검거됐다. 이 가운데 강간과 강제추행이 539명으로 88.2%를 차지했다.
이중 단 4명이 자격정지 1개월 처분을 받았다. 0.7%다.
다른 범죄라 해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2018년 범죄를 저질러 검거된 의사 수는 6169명에 이른다. 단일 전문직 중 가장 많은 수치다. 전문직은 물론 경비원, 외판원, 유흥업종사자보다도 많다. 살인, 강도, 방화, 성폭력 등 강력범죄도 165건이나 된다. 그러나 현행법이 이들의 의사자격을 취소하지 않아 출소 뒤 병원에서 근무가 가능하다.
놀랍게도 이는 한국의 특수한 상황이다. 일본의 경우 의사가 벌금 이상의 형사처벌을 받을 경우 면허취소 또는 의료업 정치 처분을 규정하고 있다. 독일 역시 의사가 형법 위반으로 확정판결을 받으면 면허 취소나 정지가 가능하다. 미국에서는 형사사건 유죄 전력이 아예 의사 면허가 나오지 않는 주요 이유로 꼽힌다.
의사에 대한 느슨한 면허 규제는 다른 전문직군에 비해서도 이례적이다. 변호사, 법무사, 공인회계사, 세무사, 변리사, 국가공무원, 사립학교 임원 등 대부분의 전문직은 형사처벌을 받으면 범죄 종류를 불문하고 등록이 취소되거나 자격에 대한 제재가 이뤄진다.
이 같은 문제로 지난 2000년부터 현재까지 의사 면허를 보다 강하게 규제하자는 취지의 의료법 개정안이 20건 이상 발의됐다. 하지만 이 가운데 국회 문턱을 넘은 건 단 한 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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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서울 신사역 인근 한 성형외과에서 수술을 받다 중태에 빠진 권대희씨 수술 당시 CCTV 영상. 수술실에 남은 간호조무사 한 명이 휴대폰을 만지고 있다. 의무기록지와 비교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당시 환자 혈압이 80까지 떨어진 상황으로 추정된다. 고 권대희씨 유족 제공. |
■"납득할 처벌 어려우니 면허라도 규제해야"권대희 사망사건과 같이 심각한 의료사고가 벌어지면 거의 모든 유족이 좌절과 맞닥뜨린다. 의료진의 과실을 입증하는 것부터가 고비인데, 입증하더라도 만족할 만한 처벌을 이끌어내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일부 중대한 과실을 입증해도 의사면허엔 문제가 없다.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권대희 사건의 경우 사전 합의된 집도의는 수술의 일부만 집도하고 수술실을 나갔다. 사전에 환자와 합의되지 않은 일명 ‘유령의사’가 이어받았고, 그마저 수술실을 비우자 무려 35분 동안 간호조무사들이 단독으로 지혈했다. 이른바 ‘공장식 수술’이 이뤄진 것이다.
이에 대해 의료법 위반 혐의를 불기소 처분한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당시 부장 강지성·현 부장 이창수) 성재호 검사는 의료진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한 공소장에서 ‘수술이 연이어 시행되었고 이러한 수술 진행 방식에서는 수술에 관여하는 의사들이 각 환자의 출혈 정도 등을 고려한 건강 상태에 대해 적절한 관리를 할 여유 없이 연속적으로 수술만 진행하게 되는데 이는 위 성형외과 원장인 피고인이 고안한 방식’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고인이 이를 들었다면 결코 납득하지 않았을 내용이다. 수술 당일 아침까지 환자와 함께 있었다던 친구 노경민씨(29)는 지난달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원장이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한다고, 철저하게 관리한다고 해서 (대희가 수술을) 거기서 한 것”이라고 증언한 바 있다.
<본지 3월 14일. ‘사람이 죽었는데 '14년 무사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참조>사전에 합의한 의사가 수술 중 나가고 경험이 적은 의사가 대신 수술을 진행하는 것, 심지어는 30분 이상을 간호조무사 혼자 지혈하는 상황을 납득할 환자가 있을까. 하지만 한국 검찰과 법원은 이와 같은 사건에서 사기나 상해죄를 적용하지 않는다.
비슷한 상황에 처한 유족들이 의료법 위반에 매달리는 이유다. 어차피 제대로 된 처벌이 어렵다면 면허라도 취소시키겠다는 심리가 없지 않다.
의사 윤리 관련 규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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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윤리강령 2 |
의사는 의학적으로 인정된 지식과 기술을 기반으로 전문가적 양심에 따라 진료를 하며, 품위 와 명예를 유지한다. |
의사윤리강령 4 |
의사는 국민 건강 증진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기여하며, 의료자원을 적절히 사용하고, 바람 직한 의료환경과 건강한 사회를 확립하기 위해 법과 제도를 개선하도록 노력한다. |
의사윤리지침 제7조 제1항 |
의사는 마약, 음주, 약물 등으로 인하여 환자의 생명과 신체에 위해를 가져올 수 있는 상태 에서 진료를 하여서는 안 된다. |
의사윤리지침 제8조 |
의사는 인간의 생명, 건강, 삶의 질 향상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하며, 법과 제도를 개선하여 바 람직한 의료환경과 사회체계를 확립하는데 이바지 한다. | |
(대한변호사협회) | |
■의사 면허 규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2000년 의료법 개정 당시 논란은 크지 않았다. 법안을 개정한 주체는 국회 보건복지위로 발의자인 김찬우 위원장과 법안을 심사한 황성균 법안심사소위원장은 모두 의사 출신 한나라당 의원이었다. 위원회 구성원 중 의사는 5명이나 됐다.
그간 의료계에선 ‘무죄추정의 원칙 위배’와 ‘직업선택의 자유 침해’, ‘이중처벌 금지’ 등을 이유로 의료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피해자가 의료진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만으로도 유죄판결이 내려질 수 있다는 점, 일부 개인의 일탈을 일반화하는 게 부당하다는 점 등이 주요 근거로 꼽힌다. 과거 대한의사협회는 개정안이 소위에서 논의되는 과정에서 이와 같은 의견을 국회에 전달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권대희씨 형 태훈씨는 사고 이후 병원이 아무렇지 않게 영업을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태훈씨는 “유가족들은 정말 힘들었다. 매일매일 자료를 보고 어떻게 입증할 수 있을까, 이슈화를 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며 “병원은 의료사건 전문 변호사를 써서 맡기고 자기들은 생업에 돌아가서 너무나 평온하게 장사를 했다. 이해가 안 간다”고 분개했다.
<본지 2월 8일. ‘의료사고로 동생 잃은지 4년…유가족은 왜 '법대로 하자'고 못할까’ 참조>병원은 권씨가 사망한 뒤 ‘14년 무사고’ 문구를 활용해 광고를 하다 적발돼 처벌받았다. 병원은 이후 같은 광고를 올려 다시 고발됐다. 이때 사건을 담당한 성재호 검사는 이미 같은 건으로 처벌을 받은 전례가 있음에도 이를 기소하지 않아 논란이 됐다.
<본지 2월 8일. ‘[단독] 수술 환자 사망에도 '무사고' 광고 처벌 無... 짙어지는 검찰 '봐주기' 의혹’ 참조>한편 권씨 어머니 이나금씨는 지난달 청와대에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수술실CCTV 설치법’을 입법해달라며 청원을 올린 상태다.
자, 여기서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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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의사 면허 규제 강화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갖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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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fnnews.com 김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