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판결 이어 법원 낙태시술 처벌 강화
불법 낙태시술을 하다 의료사고를 낸 산부인과 의사가 실형 판결과 함께 거액의 배상금을 물게 됐다.
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청주지방법원과 서울동부지방법원은 최근 낙태시술을 하다 의료사고를 낸 산부인과 의사 A씨(42)에게 각각 징역 8월 및 자격정지 1년, 7억2000만원의 배상 판결을 내렸다.
지난 2009년 여대생 B씨(23)는 충북지역의 모 산부인과를 찾았다. 임신 19주차였던 그는 의사에게 “남자친구와 연락이 두절됐고 현재 상황에서 혼자 아기를 키울 수 없으니 낙태시술을 해 달라”고 요청했다.
현행법은 낙태를 매우 제한적인 경우에만 허용한다. 임신 24주 이내에 임산부나 남편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유전적인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임산부나 남편이 대통령령이 정하는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이나 준강간으로 임신한 경우, 근친상간으로 임신한 경우 등에만 낙태가 허용된다.
하지만 의사는 불법 낙태시술을 시행했고, 수술 도중 자궁에 구멍이 뚫리는 의료사고가 발생했다. B씨는 뒤늦게 대학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패혈증으로 인한 뇌손상으로 사지가 마비됐고 끝내는 오른쪽 발까지 잘라내야 했다.
B씨의 가족은 A씨를 상대로 불법낙태와 의료사고에 대한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 3년간 법정다툼을 벌였다.
형사사건을 맡은 청주지방법원은 의사 A씨에게 징역 8월 및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다. 형법 270조3항은 불법인 낙태시술을 하다 상해에 이르게 하면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법원은 “낙태시술 및 시술과정에서의 과실로 인해 피해자가 매우 중한 상해를 입었음에도 피고인이 아무런 피해회복을 하지 않아 실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판결했다.
A씨는 남자친구에 의해 강제로 관계를 맺게 되어 임신했다는 피해자의 말을 듣고 낙태 허용사유인 ‘준강간’에 의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다만 피해자와 합의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법정구속은 하지 않았다.
민사재판을 받은 서울동부지방법원 또한 A씨가 명백한 의료사고를 낸 것으로 판단하고 거액의 배상 판결을 내렸다. A씨가 자궁경관확장제인 라미나리아 1개를 제거하지 않아 자궁천공을 유발시켰고, 피해자 B씨를 대학병원에 개인승용차로 이송하고 수액 공급도 하지 않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피고인은 의료상의 과실로 저산소상 뇌손상을 유발해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면서 “피고의 책임을 80%로 제한해 7억2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에 대해 의료소비자단체는 지난 23일 헌법재판소의 낙태시술을 한 의사에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한 형법270조1항에 대한 합헌 결정과 함께 불법 낙태시술에 무거운 책임을 부여해 사회에 경종을 울린 의미 있는 판결로 평가했다.
강태언 의료소비자시민연대 사무총장은 “낙태 시술에 대한 헌재 판결 등 사회적 논쟁이 있는 시점에 불법 낙태에 대해 분명한 책임을 묻는 판결”이라며 “불법 낙태에 대해 법원의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데일리 장종원 기자] 입력시간 :2012.09.02 15:18